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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7년사

1592.04.13
임진왜란 일어났으며 선조25년 서울을 떠남.
1592.05.03
당시 조선해군 판옥선 24척 협선 15척 포작선 46척 총 85척
왜군 서울 점령
왜적선은 50여척이었으며 조선군 첫승리, 왜군 4,000여명 수장포함 전멸하여 조선장수 이순신, 김완, 어영답 등의 활약으로 승리
이순신은 가선대부로 승진(종2품)
1592.05.07
거제시 옥포 해전에서 왜적선 26척 격파
같은날 창원 함포 해전에서 왜적선 5척 격파
1592.05.08
통영 적동 적진포 해전에서 왜적선 13척 격파
1592.05.21
경남 사천 모자량포 해전에서 왜적선 13척 격파
1592.06.02
통영시 심덕 미륵도 당포 해전에서 왜적선 12척 격파
1592.06.05
고성군 당정 당황포 해전에서 왜적선 31척 격파
1592.06.07
거제 율포 해전에서 왜적선 6척 격파
1592.07.08
한산도 견내량 해전에서 왜적선 59척 격파
1592.07.10
창원시 안골포에서 이억기의 수륙작전 승리로 왜적선 20척 격파
1592.09.01
부산 다대포 전령도 초량목해전에서 왜적선 300척 격파
1592.10.05
왜군 3만명과 진주성 격전 진주대첩(김시민)
1593.06
갓도 고니시 등이 왜군 5만명을 데리고 진주성 함락하고 6만여명을 강절벽으로 유인하여 학살하였다. 이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논개가 왜군대장을 강절벽으로 유인하여 왜군대장을 안고 물에 뛰어들어 죽음을 맞이하였다.
1594.02.12
권율장군이 행주대첩 승리로 왜군 3만여명 사살
1597.01.21
선조30년 왜군 요시라를 통한 거짓정보에 속은 선조임금이 이순신장군(당시53세)에게 출동명령을 내렸으나 이에 응하지 않은 이유로 삼도수군통제사에서 파직됨
1597.03.04
감옥에 갇힘
1597.04.01
감옥에 갇힌지 28일만인 4월 1일에 대신 정탁의 상소문에 의거 탈옥됨
1597.04.03
권율장군 휘하에 백의종군
백의종군길 : 서울시 건천동을 출발하여 충남 아산을 거처 가는 백의종군 도중 어머님이 1597년 4월 11일 여수에서 아산으로 오던중 배안에서 사망
1597.07.15
거제 칠천도 칠천양 해전에서 원균이 이끄는 조선함대는 대패하여 함선 200여척을 잃고 도주하다ㅏ 피살되었으며 배설장군이 겨우 배 12척을 가지고 경남 남해 하동으로 도주했다가 다음날 장흥 회룡포로 가서 정박함
1597.08.03
이에 다급해진 조정에서는 이순신장군을 다시 삼도수군 통제사로 임명하고 이순신 장군은 즉시 장흥 회룡포로 가서 배 12척과 조선수군 120명을 수습함
1597.
배12척과 수군120명을 이끌고 명량해전에 출전하여 조선수군 2명만이전사한 가운데 왜적선 133척을 격파하여 왜군 2만7천여명을 섬멸시켜 서해안을 돌아 인천에 상륙하여 서울 도성을 점령하려던 일본의 계획을 저지하였다. 이것이 위급한 상황에서 나라를 구한 명량해전의 크나큰 의미이며 이 해전에서 대패한 충격으로 왜적장수 풍신수길은 화병으로 사망하였다.
이 와중에 선조임금은 전쟁영웅 숙청작업을 행하여 영의정 유성용, 이순신, 남천우 도제찰사 파직 낙향
1598.
진영을 해남 우수영에서 완도 고금도로 옮김
1598.07.16
명나라 진린도독 수군 5,000명과 합세